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천진암 대성당 (문단 편집) === 불분명한 성지로서의 역사적 근거 === 사실 이곳의 가장 큰 문제는, '''천진암이 천주교 성지라는 역사적 근거가 불분명하다'''는 것. 상당수의 역사학자들은 '천진암 천주교 성지설'에 비판적이다. 이 문제는 [[http://www.catholi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275|가톨릭 계열 신문]]에서도 다뤘는데, 천진암에 대한 명백한 역사적 문헌 근거는 없다. 계속 언급되는 곳은 [[경기도]] [[여주시]]에 있던 사찰인 주어사이다. ~~천진암도 불교 암자였긴 하지만~~ 주체가 된 인물은 [[권철신]](암브로시오)[* 1736~1801. [[신유박해]] 때 순교했다.]이며, 묘비명을 남긴 [[정약용]]은 이 시기에는 [[세례성사]]를 받는 등 천주교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후 [[정약용]]은 교황이 [[제사]] 금지령을 내렸다는 이유로 [[가톨릭]] 신앙을 버린다. 실제로 당시 양반들 중 가톨릭에 흥미를 가졌던 이들 가운데, 제사 금지 때문에 포기한 사례가 넘친다. 이 때문에 세례를 받았더라도 가톨릭을 종교로 받아들인 것이 맞긴 하냐는 소리가 나온다. 반면 제사 금지를 받아들인 초기 신자들은 [[진산 사건]] 등 박해를 받았고, 평민 신자도 늘기 시작했다.]이 시기를 다룬 정약용의 글은 충분히 신뢰할 만한 자료인데, 여기서 정약용 등이 천주교를 소개 받았다고 알 수 있는 명백한 근거가 없다. 그나마 천진암이나 주어사에서 한국 천주교가 태동했다고 알 수 있는 자료는 천주교 측 샤를 달레 신부의 《한국천주교회사》와 다블뤼 주교의 《조선에 복음이 들어온 것에 관한 회상록》이라는 책인데 여기서 정약용의 '조선복음전래사'를 인용했다고 밝히면서 천진암에서 이벽, 정약용, 이승훈 등이 천주교 서적을 읽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조선복음전래사' 자체가 현존하지 않는 등 몇몇 문제가 얽혀있어서 신뢰성 면에서 여전히 설왕설래하는 중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